소형 캐릭터 인형 ‘피겨’ 수집 붐 1000억대 시장… 인터넷 카페 300개 넘어 에이리언 피겨 등 한정품 250만원에 팔려
회사원 서정호(37)씨의 반포 아파트 작은 방에는 ‘로보트 태권V’와 ‘마징가 Z’ 같은 로봇 캐릭터 인형 수백점이 빼곡히 놓여 있다. 피겨라고 불리는 이들 모형 캐릭터 인형은 거실과 배란다 등 집안 곳곳을 차지하고 있다. 서씨는 “15년 전부터 모은 피겨가 컨테이너박스 1개는 족히 넘는다”고 말했다.
대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정성원(31)씨는 얼마 전 외국 경매 사이트를 둘러보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영화 ‘스타워즈’의 제다이 피겨를 발견하고 20만원에 즉시 구매했다. 현재 정씨가 소장하고 있는 피겨는 200여점. 가격으로 따지면 3000만원이 넘는다. 정씨는 “어릴 때 스타워즈 장난감을 갖는 게 소원이었다”며 “어릴 적 소원을 직장인이 된 후 이루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어린이산업으로 생각되던 완구시장에서 성인들이 주요 고객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영화·만화 캐릭터를 정교하게 만든 고가(高價)의 피겨제품을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성인들이 급격히 늘면서 관련 산업도 팽창하고 있다.
◆피겨 수집 붐… 동호회만 300여개
회사원 정성학(27)씨는 얼마 전 피겨 전문 인터넷 카페인 ‘아이피규어’에 가입했다. 전시회와 판매처 등 피겨와 관련한 최신 정보를 얻고 있다. 이곳 회원 수는 1만6000여명. 정씨는 “회원들끼리 모여 전시회를 열고 희귀한 제품은 사고팔기도 한다”며 “단순히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수집하듯 피겨를 수집한다”고 말했다. 현재 피겨 관련 인터넷 카페는 300개가 넘는다. 이들 피겨 동호회는 애니메이션과 밀리터리(군사용), 영화, 스포츠 등 대부분 분야별로 특화돼 있다. 피겨 수집 마니아가 늘면서 아예 취미를 살려 창업에 나선 사례도 있다. 플라스틱 조립 장난감 전문점인 ‘하비랜드’를 운영하는 정우영(38)씨는 피겨와 프라모델을 모으다 아예 창업에 나선 경우다. 매장을 찾는 고객도 대부분 그와 나이가 비슷한 성인들이다.
◆성인 장난감시장 1000억원 규모
인터넷게임 등으로 수요가 줄어든 완구시장은 어른들이 메우고 있다. 완구업체 아카데미과학의 이봉우 차장은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아이들은 더 이상 장난감에 관심이 없다”며 “현재 생산하는 제품의 70%는 어른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피겨를 포함해 성인 장난감시장은 대략 1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피겨제품의 가격은 대개 10만~30만원 정도가 대부분. 하지만 에이리언 피겨 등 한정 생산된 제품은 250만원이다. 특히 희귀한 제품의 경우 웃돈이 붙어 인터넷에서 거래되고 있다.
대학생 김영곤(25)씨는 “국내에서 찾기 힘든 제품은 해외 경매 대행을 통해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정 생산된 제품들은 서너 배 이상 높은 가격에 사기도 한다”고 말했다. 해외구매 대행업체인 비드바이코리아가 올해 들어 취급한 피겨 거래건수는 7000건이 넘는다. 비드바이코리아 이지혜 팀장은 “피겨 구매자의 70%는 성인 남성”이라고 말했다.
아카데미과학 이봉우 차장은 “어릴 적 추억을 그리워하는 일부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성인 완구시장이 너무 커졌다”며 “새로운 콘텐트산업으로 성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키워드… 피겨(figure)
사전적 의미로는 인물상(人物像)을 뜻한다. 완구 분야에서는 영화·만화·게임 등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축소해 거의 완벽한 형태로 재현한 인형을 일컫는다. 보통 PVC나 천연수지 등이 재료로 쓰이며, 관절이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다.
[이성훈 기자 inou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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