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서평>
일상적인 현상을 최신의 미학이론과 접목시킨 책
문화와 예술에 관련된 글에 자주 등장하는 아우라, 키치, 시뮬라크르, 해체 등의 뜻을 정작 정확하게 아는 독자들은 드물다. 누구나 안다는 듯 아무런 설명 없이 필자들이 쓰는 이런 용어들을 독자들은 막연히 이해하고 있지만, 가끔은 그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용어들의 기원은 무엇이며, 어떤 철학적 근거를 갖고 있는지를 일반인도 알 수 있는 평이한 설명으로, 그러나 권위 있는 전문가로부터 들었으면 하고 원할 때가 있다.
[마이클 잭슨에서 데리다까지]는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시의적절한 책이다. 그렇다고 개념어 사전 같은 인문학 입문서는 아니다. TV 드라마 '미워도 다시 한 번'이나 박찬욱의 영화 '박쥐' 또는 마이클 잭슨의 갑작스러운 죽음 등이 최신의 미학 이론으로 넘어가기 위한 일종의 도약대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고급 인문학 이론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TV 드라마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이나 프로프의 민담 서사 이론, 혹은 프로이트의 '가족 소설' 이론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영화 홍보 중 송강호가 쓴 '숭고'라는 단어에서 요즘 최고의 미학 이론으로 부상한 '숭고'의 개념을 칸트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고 있다.
신종 플루 초기 단계에서 일부 국가들이 보여주었던 과도한 대응에서는 미셸 푸코가 말하는 생체 정치학 이론을 떠올렸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기간 중에 보였던 비이성적 대중의 쏠림 현상에 대해서는 냉철한인식의 눈을 가리는 신화화 현상을 경계하면서, 롤랑 바르트의 신화학 이론과 그 토대가 되는 구조 언어학 및 기호학 이론을 소개했다.
배우들을 묘사할 때 흔히 쓰는 단어 '아우라'는 독일의 미학자 발터 벤야민의 개념임을 밝히고, 벤야민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사진과 아우라의 관계를 조명하고 있으며, 서울 근교의 러브호텔이나 웨딩 홀의 건축 양식으로 굳어진 서양 성(城)의 모조에서 키치 현상을 발견하고, 현대 미술이 전반적으로 키치의 미술임을 확인하기도 한다.
흔히 소녀들의 동화로 알려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실은 플라톤의 생성 이론, 더 나아가 들뢰즈의 의미 이론을 감추고 있는 고도의 철학 동화라는 것에 주목했으며,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론을 통해서는 가상이실재를 능가하는 현대 사회를 진단한다.
마이클 잭슨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뉴스에서 저자는 자신이 80년대에 어린 자녀들과 함께 열광했던 '빌리진', '스릴러'등의 곡을 다시 반추하며 미국의 비인간적 상업주의가 개인의 고도의 자아실현으로까지 이어지는 역설을 논했다. 역시 표제어인 데리다 항목에서는 전 세계 인문학의 기초를 뒤흔들었던 데리다의 '해체' 개념을 미술, 건축, 광고, 패션 등의 쉬운 현상에서부터 출발하여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일상의 미학, 미학의 일상'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우리 주변의 대중적 현상에 대한 미학적 성찰도 눈에 띈다. 시카고의 밀레니엄 파크에 설치된 공공미술 작품 클라우드 게이트와 크라운 파운틴을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그것을 광화문 광장과 비교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두 작품을 디자인한 예술가들의 철학적 상상력과 대중과의 소통에 대한 관심을 전하면서, 저자는 황량하게 설계되어 본래보다 오히려 나빠진 광화문 광장의 모습을 애석해 한다.
흔히 계급이 없는 사회로 알려진 미국이 실은 엄청나게 도식화된 계급의 사회임을 확인하고, 계급의 문제가 결국은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에 목말라 하는 현대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불편한 진실, 계급'도 흥미로운 글이다.
일상적 사건들을 포스트구조주의 현대철학으로 해석
이 책은 '노마드 강의'라는 제목으로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인터넷신문 [뉴 데일리]에 연재되어 호평을 받았던 글을 묶은 것이다. 최신의 철학 이론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젊은 여성들의 레이어드 룩이나 팬시 상점의 자질구레한 물건들에서부터 시작하여,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그 속에 감추어진 참신한 현대 철학의 원리를 알 수 있게 된다.
하찮거나 일상적인 다양한 사건들을 포스트구조주의 현대철학으로 해석했으며, 그 최신의 현대철학 이론들이 실은 플라톤 등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암암리에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현대라는 사회를 해석하는 독특한 방법을 독자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이처럼 다양한 주제, 다양한 접근의 방법을 썼다고 말한다. 고도의 인문학 이론을 개진하면서도 결코 어렵지 않게 차분히 풀어쓴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인터파크에서 발췌-
<본문 중에서>
데리다 쉽게 읽기
해체주의 미술
구스타프 메츠거의 행위 예술...가지를 쳐낸 21그루의 버드나무를 거꾸로 세워 콘크리트 판에 박은
'도리깨질 하는 나무들'....
해체주의 건축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작품. .ㄴㅁ.의 월트디즈니 홀....구부러진 선과 각진 선이 뒤얽혀 건물 전체
가 휘어지고 뒤틀린...해체주의 건축은 비대칭성, 불확실성을 추구한다. 건물의 중심이 없으며, 통일성이나
계층적 질서도 없다....마치 미술의 콜라주 기법처럼 역사적 이미지를 파편화하여 이를 재구성함으로써 혼성
모방의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해체주의 패션
...꼼므 데 가르송(소년처럼)의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의 옷들이다...미완성의 햄라인(옷단), 풀어 헤쳐진 솔기, 복잡하게 얽힌 꿰매 붙이기, 특이한 주름, 비대칭, 다양하게 찍기와 소재의 믹싱 등 실험적인 디자인을
통해 '옷은 신체에 맞아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타파했다.
해체주의 광고
이탈리아의 캐주얼 의복 브랜드인 베네통은 키스하는 수녀와 신부, 백인 여자와 흑인 남자와 황인종 아이,
알록 달록한 콘돔, 기름을 뒤집어 쓴 오리 등 파격적인 광고사진을 텍스트 없이 비주얼만 내보냄으로써 1980~90년대 전 세계 소비자의 시선을 강렬하게 잡아 끌었다......
글쓰기와 파르마콘
...파르마콘이란 말하자면 의학적 묘약으로, 치료제이기도 하고 동시에 독이기도 하다.
적당히 쓰면 약이지만 자칫 잘못 쓰면 독이 된다....문자는 기록을 통하여 우리의 기억을 보완해 주고 대신
해 주는 순기능을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기억력을 감퇴시키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글쓰기와 친부 살해적 성격
소크라테스가 문자의 기능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문자가 그림과 같이 살아있는 대상을 감쪽같이
모방하여 실재와 모조품 사이의 구별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그래서 플라톤응 문자가 죽음을 삶처럼
꾸미는 가면이거나, 아니면 짙은 화장과 같다고 했다.
해체의 해방감
독자들은 왜 그토록 난해한 데리다의 철학에 열광했으며, 이제 유행처럼 사라진 듯한 그의 '헤체'는 왜
그토록 넓게 문화현상의 저변에 말없이 깊숙하게 스며들어 있는 것일까?
무질서가 주는 편안함과 해방감 때문일 거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빈틈없는 이성의 틀에 사로잡혀 숨
죽이고 살아왔다. 르네상스 시대의 자로 잰 듯한 좌우대칭으리 건물에서부터 코르셋으로 조이는 여성의
옷에 이르기까지, 근대적 합리성의 온갖 예의범절과 위계질서에서 해방되어 이제 사람들은 직선과 직각
대신 구부러지고 휘어진 사선,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 대신 더럽고 지저분한 것, 칼날 같은 구분 대신 이것도
저것도 아닌 비대칭성, 위선적인 엄숙함 대신 어린아이의 천진함을 닮은 유희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중심이 없거나, 있어도 유일무이하게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며, 중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변도 중요하며, 중심으로 상징되는 권위는 해체되어 모든 요소가 등가의 가치를 갖게 되는
그런 세상에 대한 꿈을 해체적 건축, 해체적 패션으로 가시화시켰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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