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어렵다.
대신 요즘 내게 자꾸 눈에 띄는 단어와 와닿는 의미에 관한 내용과 이와 함께 떠오르는 생각을
옮겨 적는 걸로 하겠다!
<목차>
1 파타피직스 입문
이상한 나라의 형이상학 pataphysics -온갖 우스꽝스러운 부조리로 가득찬 사이비 철학
파타포와 닌텐도 pataphor -현대인은 파타피지컬한 종種이 되어가고 있다
디지털의 광우 folie -허경영의 현상을 바라보는 데에는 두 개의 극단이 있다
2 냉소적 이성
안 믿지 않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suspension of disbelief -믿는 것을 안 믿지 않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
범주 오류 category mistake -속하지 않는 집합에 집어넣는 실수
벌거벗은 임금님 kynismus -그들은 모른다 그러나 행한다
스파르타의 유머 laconic -디테일을 제쳐두고 곧바로 사태의 본질을 치는 화법
3 차이와 반복
무한소의 차이 inframince -가시적 영역 아래, 지각할 수 없는 무한소의 차이
리트윗의 반복가능성 iterabilit? -반복을 통해 발생하는 차이는 소통을 가로막는 '일탈'이 아니다
시차적 관점 parallax -서로 충돌하는 두 입장을 함께 유지하는 사유의 새로운 습관
4 정체성과 차이
양 가죽을 쓴 늑대 identit? -왼쪽과 오른쪽, 서로 방향은 달라도 멘탈리티는 동일하다
자기를 조각낸 사나이 heteronym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닐 때 '근대적 주체'의 관념은 해체된다
차이 속의 연대 syncretism -생각이 달라도 얼마든지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5 시뮬라크르
시뮬라크르의 반란 simulacre -복제는 사라진 실재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독배 pharmakon -‘진짜’와 ‘가짜’를 가르고 솎아내려는 충동
양들의 침묵 le nom du p?e -논리를 초월한 사안은 '논'파가 불가능하다
6 정치신학
유물론자의 신학 materialist theology -유토피아는 은밀히 작동해야 한다 마치 촉매처럼
불꽃놀이 apparition -어두운 현실에 불꽃놀이를 그리는 창조의 능력
카페 볼테르의 레닌 apocalypse -오늘날 좌파가 부활시킨 신학은 사실상 아나키즘이다
7 저항의 미학
바틀비라는 구세주 versagung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
탈주와 아방가르드 fuite -‘탈주’역시 아방가르드와 비슷한 운명에 처하지 않을까?
역사의 우연성 irony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발적 사건으로 만들어진다
유령들의 인터내셔널 hantologie -계급에 속하지도 정당의 형태를 취하지도 않는 동맹
8 상상, 상징, 실재
텔로스에서 미토스로 mythos -오늘날 텍스트를 대신하여 실재를 표상하는 것은 이미지다
언캐니의 푼크툼 punctum -존재하는 듯이 보이는 대상에서 느껴지는 어떤 섬뜩함
인형의 노래 machine -인간-기계는 더 이상 은유가 아니다
데드팬의 미학 deadpan -세계와 현존재 사이의 원초적 만남의 상태
9 세계의 기분
부조리 속의 무력함 kafkaesk -현실 자체가 영원한 미로라면
신을 버린 세계의 허무함 nihilism -모든 절대성을 부정하며 허무의 상태를 끌어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지루함 ennui -무의미한 삶이 기계적으로 반복된다는 느낌
10 사악한 유혹
악마의 철학 mal -악마를 잡기 위해 악마보다 더 잔혹할 필요는 없다
예술과 구토 abject -역겨움, 그 금지된 욕망을 표현하고 실현하는 예술
엑스터시 ecstasy -하시시와 트랑스
11 우연과 생성
완성으로서 미완성 non finito -과정으로서의 창작, 생성으로서의 작품
코라 chora -무無로부터 현상들이 나타나는 영원한 생성의 장場
액자에 관하여 parergon -외부에 있으면서도 은밀히 내부에 간섭하는 것
과학의 파레르곤 serendipity -세렌디피티는 과학의 밖에 있으나, 그 안으로 깊숙이 작용한다
12 구원
구제비평 rettende kritik -아담의 비평은 사물 속에 들어 있는 언어적 본질을 온전히 읽어낸다
개념은 세상을 읽는 아이콘이다
세상을 읽는 철학의 도구상자
<출판서평>
"새로운 개념은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해준다."
미학자, 시사평론가 진중권이 "현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철학의 38가지 개념을 소개한다. 주변의 다양한 사건을 접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인식의 오류를 분석하고, 다수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도록 돕는 생각의 틀('철학의 개념')을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책이 말하는 '아이콘'은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라는 뜻이 아니라, 컴퓨터 화면의 아이콘(시각화된
명령어)을 뜻한다. 아이콘을 이용해 복잡한 명령어 없이 간단히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듯, '개념어'를
통하면(인지하고 있으면) 전문적 철학 지식을 완벽하게 갖추지 않아도 철학적 수준의 깊은 사유가 가능하다
는 것이다.
이 책은 잡지 씨네21에 '진중권의 아이콘'이란 제목으로 2010년 4월부터 1년간 연재된 칼럼을 모아 수정,
보완한 책이다. 사회적 이슈들(천안함, 트위터, 허경영, 심형래 등)을 철학의 개념을 동원해 분석한 연재
당시의 칼럼들은, 주제별(냉소적 이성, 시뮬라크르, 정체성과 차이 등)로 분류되어 큰 사유의 틀에서
종합적, 복합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편집되었다.
이 책에 소개된 철학의 개념어들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일 터져 나오는 현실에서 남의 의견(혹은
'우리 편'의 의견)을 따라 외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사유를 통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인식의
훈련 도구다.
예를 들어 독자는, '범주 오류'라는 개념으로 '타진요' 회원들이 타블로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어떤
인식의 오류를 범했는지 들여다보고, '파타피직스'의 개념을 통해 '닌텐도 위WII'와 '허경영'을 동시에 '즐기
는'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을 분석해볼 수 있다.
또한 진정한 연대의식을 뜻하는 '싱크레티즘'과, 상대방과 나의 차이를 인정하는 '시차적 관점'과 같은 개념
을 통해 관용과 상대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표명한 나의 주관적 견해나 주장들은 모두 잊어도 좋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개념의 사용
법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범례에 불과"하기 때문이란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의견과 관점에는 서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저자의 목표는 '내 주장이 옳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성에 젖은 판단을 내리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안내하는 데 있다.
-인터파크에서 발췌-
------------------------------------------------------------------------------------------------
<본문 중에서>
시뮬라크르의 반란
플라톤은 세계를 세 등급으로 나누ㅓㅆ다.
그에게 최상의 실제는 역시 이데아의 세계였다. 이 세계가 현실의 모범이고, 우리가 사는 현실의 모든 것은 이 원본의(다고 불완전한) 복제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엔 원본의 복제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엔 원본의 복제만 있는 게 아니다.
이 복제를 다시 복제하는 놈들도 있다. 이렇게 '원본의 복제'를 '시뮬라크르'라 부른다. 어감에서 이미 느껴지듯이 그 말은 '사이비', 즉 진짜와 비슷해 보이는 가짜란 뜻이다.
이데아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기에, 진짜와 가짜를 구별한다 함은 곧 참된 복제('원본의 복제') 중에서
가짜 복제('복제의 복제')를 솎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톤은 당시 예술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시각적 트릭
을 예로 든다. 가령 그리스이 조각가들은 신상을 제작할 때 실제 인체 비례보다 머리를 좀 더 크게 만들곤
했다. 그래야 아래서 올려다 볼 때 비례에 맞아 '보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이를 비판한다. 그것은 비례에
맞아 '보일 뿐;, 실제론 비례에 어긋난다는 것. 한마디로 그것은 가짜 복제, 즉 시뮬라크르라는 얘기다....
철학자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짜 철학자란 당시의 맥락에서 소피스트들을 가리켰다....아리스토 텔레스 이후 '소피스트'라는 말은 아에 사이비 철학자를 가리키는 경멸어가 된다.
오늘날엔 교묘한 현학적인 궤변을 늘어 놓는 것을 흔히 '소피스트리'라 부른다.
수천 년 묵은 이 낡은 사고방식에 균열을 낸 것은 발터 베냐민.
그 유명한 논문에서 그는 복제의 존재 자체가 원본의 개념을 위협하는 경향을 띤다고 지적한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은 아마도 그런 경향의 극단적 시나리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
(아주 오래 전 공평동 (그때 가나아트?) 시절에 리히텐슈타인 작품과 우리나라 작가 ***의 작품이 함께 전시
되었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약간의 시차가 있을 수도...?! 그때 그 작가의 그림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너무도 유명한 캐릭터를 작품의 주 모티브로 삼은 까닭에 이걸 모방이라고 봐야하나? 재창조 라고 봐야
하나? 판단이 안서면서 사실 그 작가를 우습게 여겼었다. 그러나 그 작가 지금은 한국의 대표적인 키치아트?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아직도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못하지만, 요즘 광고나 영화 여러 장르에서 서로 패러디하는것과 심지어는
코미디 프로에서 조차 자기네 프로 안에서 다른 코너의 내용을 집어 넣어 패러디하는 일이 많다보니 그 선이
모호해 진것도 사실이다.
대학시절 은사님은 절대 남의 작품은 베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셨다.
광고 회사 재직시정 다른 나라 작품을 그대로 베끼는 일은 나중에서야 그것이 카피라는게 밝혀지고 창피
한 일이라는것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스스로의 아이디어인 양 반복적 카피를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모방에서부터 창조가 출발한다거나 혹은 모티브? 아이디어만 얻어 작품을 다르게 풀어내는 예도 있으니...점점 그 판단은 애매해지는게 사실이다.
이것도 아주 오랜 전일....대학로 모 극장에서 외국 유학에서 돌아온 작가가(장르는 ?) 한지를 배경으로
어둠 속에서 붓으로 장자와 나비를 번갈라 그리며 그 유명한 장자의 나비의 꿈에 대한 퍼포먼스? 를
봤던 기억이 있다.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을 검색하면 메트릭스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나온다.
어느것이 현실인지 구분이 안되고 사실 그럴 필요조차 없이, 사람들은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하고 그
포장된 이미지를 따르는...뭐 그런게 시뮬라시옹...? 점점 세상은 현실과 꿈 진짜와 가짜가 모호해져 가고
있다. 그 속에서 깨어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부조리 속의 무력함
현실 그 자체가 영원한 미로라면
...지금은 '포기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지만, 카프카가 남긴 원고에는 제목 어뵤이 그저 '코멘트'라고만
적혀 있었다고 한다. 무엇에 대한 코멘트 였을까? 알 수 없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꿈을 생각해보자. 온 힘을 다해 발을 움직여도 몸은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다.
도주는 무의미하다. 비슷하지 않은가? 글 속의 주인공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그 도시에서 빠져나오려 한다.
기차를 놓치면 도시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는데 기차의 출발 시간은 다가오고, 나는 역에 도달할 길이 없다.
하지만 도시는 거대한 미로. 거기서 유일한 구원자로 여겼던 순경은 외려 '포기하라'며 나의 노력을 비웃는다. 현실에서 충분히 벌어질수 이있는 상황이다. 어딘지 악몽처럼 섬뜩한 데가 있다.
고유명사 뒤에 '스럽다'는 어미를 붙여 형용사를 만드는 어법이 있다. 독일어에도 '카프카그럽다'라는 낱말이 존재한다. 두덴 사전은 '카프카의 묘사방식처럼'이라는 설명과 더불어 그것을 '수수께끼 같으면서도 섬뜩하고 위협적인'이라고 정의한다.
신을 버린 세계의 허무함
'니히리즘'은 '무'를 의미하는 라틴어 '니힐'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이 개념이 널리 알려진 것은 역시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을 통해서다. 거기서 니힐리스트는 "어떤 권위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아무리 주위에서 존경을 받는 원칙이라고 해도 그 원칙을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 소개된
다. 파벨 키르시노프에게 "가족 안에서든, 사회 안에서든 정대적 경멸을 받지 않을 만한 제도가 한아라도
있다면 니힐리스트이기를 포기하겠노라'고 말한다....
키에르 케고르는 니힐리즘을 '균일화'의 결과로 파악한다.
모안 돌이 정 맞는다고 할까? '균일화'란 사회가 한 개인의 개성을 더 이상 다른 이들과 구별될 수 없을 정도
로 말살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어떤 대의에 헌신할 열정을 가진 개인도 이 사회는 사정없이 균일화시켜
기어이 맥 빠진 평균으로 되돌려놓는다. 이때 저만치의 가치와 의미를 확인할 수 없게 도니 개인은 허무의
상태에 빠져든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니힐리즘을 극복하고 유의미한 삶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지루함
무의미한 삶이 기계적으로 반복된다는 느낌
...철학은 전통적으로 인간의 정신 활동 중에서 주로 '인식;이나 '지각'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인식론주의 전통에 익숙한 정신에 이른바 '실존 철학'의 개념들은 매우 당혹스럽게 느껴질 게다.
가령,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가 갑자기 '기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을 생각해보라. 어떻게 그런 게
철학의 주제가 될 수 있을까? 기분이란 학적으로 객관화하기에는 너무나 주관적인 느낌이 아닌가.
하지만 하이데거의 생각은 다르다. 그에게 느낌은 이성보다 근원적인 것이다. 즉, 세계는 '인식'을 통해
알려지기 이전에 먼저 '기분'을 통해 열린다.....'역겨윰'과 더불어, 철학적 의미를 갖는 기분이 또 있다면,
아마도 '지루함'일 것이다.....산업화한 도시 속에서 모든 것은 기계적으로 반복된다는 느낌.
이것이 현대인이 느끼는 지루함의 요체가 아닐까?
지루함에도 종류가 있다. 가령 외부의 대상에 대한 지루함이 있을 수 있다.
가령 우리는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지루함을 느낀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아마도 내면에서 올라오는
지루함이리라. 삶자체가 쳇바퀴처럼 돌고 있다는 느낌. 물론 지루함이 언제나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때로 지루함은 휴식과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며 우리를 새로운 창조로 이끈다.
하지만 그 어떤 삶의 행위로부터도 의미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절대적 지루함은 인간을 보들레르가 말한 "처형대"로 이끌 수 있다.
자살에 반드시 처절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완성으로서 미완성
...막 대리석을 찢고 밖으로 나오려 몸부림치는 미완의 형상들이 내게는 그 유명한 조각상 <다비드.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준다.,...미완ㅅㅇ작이 예술가의 내적 갈등의 결과로 빚어진 경우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두 개의 구별되는 단계가 존재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1. 작가가 그저 창작의 한계에 부딪혀 작품을 미완성으로
방치하는 것'과 '2. 미완성의 상태 그 자체를 또 다른 오나성으로 제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르네상스의 다른 작가드은 어땠는지 몰라도, 미켈란제로는 확실히 첫 번째 단계를 넘어서 둘째 단계까지 나아가려 했던 것 같다....
과학의 파레르곤
...세렌디피티란 연구의 과정에서 애초에 의도하지 않은, 그러나 매우 귀중한 발견을 우연히 해내는 것을
가리킨다....과학의 결정적 발견이 순수한 우연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연역이나 귀납이라는 합리적 절차에
익숙한 과학자들에게 불편함을 준다.
사실 루리아가 그 발견에 이르게 된 진정한 과정은 과학논문에 실릴 수 없다.
논문에서는 문제의 출발에서 발견된 사실에 도달하는 모든 과정이 오로지 과학적, 합리적 절차에 따라서만
이루어진 것처럼 기술하야 하기 때문이다. 즉 논문 작성은 그 유명한 파스퇴르의 격률에 따라 이루어진다.
"모든 것을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라"문제는 그 발견이 실제론 필연적이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느낌이 남은 책 & 영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있는 학교 어떻게 만들까? (0) | 2012.01.14 |
---|---|
신과 함께(만화)/주민호/애니북스 (0) | 2012.01.10 |
내가 왜 그랬을까/윌리엄 헬름라이히 / 말글빛냄 (0) | 2012.01.06 |
미디어 아트는 X 예술이다/박영욱/향연 (0) | 2011.12.30 |
트렌드 히치하이킹/김용섭/김영사 (0) | 2011.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