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 토니 주트 ㅣ 역 : 김일년 ㅣ 출판사 : 플래닛(PLANET)
지난 주 홍세화의 강연 <왜 보편적 복지인가?>를 들으러 가던 날 빌려 놓았던 책인데...우연히
같은 맥락의 책을 빌린 셈이다.
이 책은 내가 신문에 소개 된 글을 읽고 희망도서로 신청한 건데..오늘 반납일.
미처 다 읽지 못했을 뿐더러 밑줄 긋고 읽을 정도로 심취되어 있던 터라 반납하지 못하고, 추가로 신청한
희망도서를 받으러 가니...모르고 이 책을 또 주문해 놓은 것!
암튼 요즘의 내가 ...자연스럽게 관심이 이런 쪽으로 흐르고 있으니...!
문제는 행동하는 것에 앞서 이런 생각들을 사람들이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강연 뒤 소감에서도 밝혔지만 스스로 깨어있고자 하지 않는다면, 또한 그런 것들이 일부 사람들끼리만
떠들어대는 이야기라면 그건 아무 의미도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자 소개:토니 주트(Tony Judt)
1948년 런던에서 출생. 케임브리지 대학과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하고, 케임브리지 대학, 옥스퍼드
대학, 버클리 대학, 뉴욕 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또한 뉴욕 대학에 유럽을 연구하는 레마르크 연구소를 설립
해 소장으로 재임해 왔다. 주요 저서로는 [포스트워 1945―2005][재평가: 잊혀진 20세기에 대한 고찰]
[유럽, 보복의 정치학][거대한 환상? 유럽 에세이][불완전한 과거: 프랑스 지성 1944-1956][책임의 짐:
블룸, 카뮈, 아롱, 그리고 프랑스의 20세기][마르크스주의와 프랑스 좌파]등이 있으며, 2007년에 한나
아렌트 상을, 2009년에 조지 오웰 상을 수상했다. 2010년 8월 루게릭병으로 타계했다.
*책을 사서 읽으면 좋겠다.
내가 밑 줄 그은것을 여기로 옮겼으나...너무 양이 많은 관계로 저작권 문제도 있고 해서 비공개로 해 놨다.
그 중 극히 본문 일부만 옮겨본다.
<목차>
서문
1.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2. 잃어버린 세계
3. 참을 수 없는 정치의 가벼움
4. 그 모든 것과의 작별?
5. 무엇을 할 것인가?
6. 도래할 미래의 양상
------------------------------------------------------------------------------------------------ <본문 중에서>
*서문:혼돈에 빠진 사람들
1.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바로 우리 코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끈임 없이 투쟁해야 한다
(조지오엘)
*풍요로운 개인, 비참한 공동체.
2005년, 미국 국민소득 21.1%가 단 1%의 소득자에게서 발생했다.
세대간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다.
실직과 불완전한 고용은 노동자들이 지금껏 갈고 닦아온 기술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고, 결국 이들을
만성적으로 경제에 불필용한 존재로 전락시키고 만다.
불평등은 곰팡이와 같다. 그것은 사회를 내부로부터 좀먹는다.
물질적인 차이가 미치는 영향이 모습을 드러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시간이 무르익으면 지위와
재화를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고, 사람들은 점차 자신의 재산에 기반을 두고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낀다.
사회적 사다리에서 자기보다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강화될 뿐만 아니라 범죄가 폭증
하고 사회 병리학적 현상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고삐 풀린 부의 추구가 낳는 병패는 정말 혹독하다.
*타락한 감정
신빈민구제법은 폭거나 다름없었다. 이 법은 빈곤층과 실업자들을 받아들이기 힘든 양자택일의 상황으로
내몰았다. 그들은 아무리 적은 임금이라도 돈을 받고 일을 하든지 아니면 강제 노역소에 수용되는 굴욕을
감수하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복지가 필요한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복지를 제공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우리는 번영과 성공이라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낙오자는 죽든지 말든지 내버려두고 있는 사회에
눈을 돌리려 한다. 안타깝게도 그 사회는 바로 미국이다.←우리사회도 미국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
*경제지상주의와 그 부작용
-"우리가 이윤 추구에만 급급한 삶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문명을 바꾸는 첫걸음이 될 것
이다."(존 메이너드 케인스)
우리는 경제적 논의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서라면 지독하게 공리주의적인 계산에 광채를 덧씌워 자기만족
에 도취되는 행태를 보이며 정말 말도 안되는 '윤리적' 어휘를 동원하는 것도 서슴지 않게 되었다.
빈민층은 다른 계층에 비해 투표에 참가하는 비율이 현저히 낮다.
따라서 그들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린다 하더라도 정치가들이 치러야할 정치적 위험은 미미한 수준에 불과
하다.
2. 잃어버린 세계
*공동체, 신뢰, 공동의 목적
-다른 이들을 많이 배려하고 스스로를 더 적게 배려하라. 자신의 이기심을 억제하고 자신의 자비를 보여
주라. 인간의 본성은 이로써 완성된다."(에덤 스미스)
*위대한 사회
보다 많은 저임금 일자리의 창출을 포기하는 대신 '좋은' 일자리들을 보호하기로 한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의 복지 정책은 신중한 결과였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내 놓고 있는 실업자 정책의 일자리 임금은
알바 최저 수임그 수준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원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3.참을 수 없는 정치의 가벼움.
중산층 시민단체들은 공격적이고 무차별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철거 사업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
했다.그들은 이러한 철거사업이 단순히 '꼴불견'의 슬럼만이 아니라 소중한 건축물들과 도시 경관을 아울러
파괴해 버린다고 주장했다....이러한 사업들은 공동체를 위한 친사회적 근대화의 과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방종하고 무분별한 권력의 증상으로 보였다.←우리의 4대강 사업과 서울& 경기 일부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뉴타운 사업이 이와 같다 할 수 있겠다.
*민영화 예찬
20세기 들어 근대 국가들이 하나 둘 탄생하면서부터 대중교통, 병원 학교, 우체국, 군대, 경찰, 그리고 여러
문화 기관들, 즉 이윤 동기만으로는 적절히 기능하지 않는 필수 서비스들은 공공의 관리와 통제하에 들어
갔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서비스를 담당하는 기구들이 민간기업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
*민주주의의 결핍
공공 부문의 해제가 가져온 가장 두드러진 결과는 우리가 다른 동료 시민들과 무언기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이 사회를 '원자화'시킨다는 불평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사람들을 자신이 관심이 있는 지식과 정보의 조각들만 선택하면서 다른 모든 것과는 관계를
단절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전 지구의 여러 공동체들과 성택적 친화력을 갖게 되지만 정작 우리
이웃에 대한 친화력은 잃어버리게 된다.
정치는 그 일을 하라고 뽑아 놓은 자들에게 맡기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자의 움직임은 반대방향
으로 멀찍이 달아났다.
★우리를 대변할 대표자를 선출해서 의화로 보내는 것은 국민의 이해관계와 복잡한 공동체 업무 사이의
균형을 맞출 수 있게 하는 합리적인 기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우리가 위임한 만큼만 권력을 행사하는
지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않을 경웅, 그들이 우리의 의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의 의사
에 복종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은 권위도 신념도 가지고 있지 못한다...그들은 가벼운 정치인들이었다. 이러한 인물들을 더 이상 신뢰
하지 못하게 되면서, 우리는 단지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만을 잃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국회 그 자체에 대한
신뢰마저 잃어버렸다. 이럴 때 사람들은 무뢰배들을 쏵 쓸어 내버리고 싶다는 강렬한 적개심을 느끼거나,
'그래, 어디 갈 때까지 가 보라" 하는 식으로 자포자기 심정이 된다.
우리는 정치 운동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잇다....그때마다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공유하고 있는
단일한 관심사만을 외친다. 그러한 개개인의 관심사들을 공동의 목표로 전환시키려는 어떠한 노력도 그
관심사들의 파편화된 개인주의로 인해 좌절되고 만다....하지만 사람들은 니 목표들을 여럿이 모여 감정을
분출하는 것 이상으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 삶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적 삶에서도 우리는 소비자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서로 경쟁하는 여러 목표들 중 하나를 선택할 뿐, 이러한 목표듣을 하나로 아우르는
전체를 상상하지 못하고,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적어도 이보다는 더 잘해야 한다.
4.그 모든 것과의 작별?
5.무엇을 할 것인가?
*반대를 허하라
슬프게도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공공 정책의 핵심 내용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식인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이러한 일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대신 선택 사항들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
는 윤리적인 문제에 개입하거나 항의하는 일을 더 좋아했다.
문제는 주어진 법안을 찬성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문제는 공동의 관심사를 논쟁에 붙이는 방식이다.
*공적 대화의 재구축
-"바람과 조류에 대한 지식 없이 항해에 나선 배는 아무리 열심히 배 밖으로 물을 퍼 나르더라도 물 위에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목적의식이 없는 인간과 사회는 도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난파할 수밖에 없다."
(리차드 티드머스)
변화를 상상하고, 계획하고, 실행한 자들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봉착한 문제를 만든 주범들이었던 것이다....양적인 평가를 허락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까? 웰빙, 공정, 공평은? 배척이나 기회의 부재
혹은 잃어버린 희망은? 이러한 고려 사항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전체의 이익이나 성장으로 따질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부와 더 나은 삶의 의미를 더 큰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것, 다시 말해 공적 대화를 재구축하는 것만이 변화의
첫 단추를 제대로 채울 수 있는 유일한 혀닐적인 방법이다. 다르게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르게 사고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의 본능을 자신할 필요가 있다. 어떤 정책, 어떤 행위, 어떤
결정이 어딘가 잘못되어 보인다면, 우리는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재개된 사회적 질문
오늘날 상황은 변했다. 비숙련 혹은 반숙련 노동자들을 위한 일자리는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기계와 로봇에 의한 생산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히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 시장의 세계화로 인해 일자리가
보다 평등주의적인 사회를 구현하고 서구 선진국에서 중국을 필두로 한 보다 억압적인 사회 체제와 저임금
에 바탕을 둔 경제로 옮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사람들은 '불완전 고용'을 희망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자신이 가진 기술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일자리를 받아들이고, 그도 아니면 전통적으로 이민자들이나 젊은이의 몫이었던 비숙련 노동 일자리를 기웃거리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일자리를 앓고 장기 실직 상태에 놓일 것을 두려워할 만한 합당한 이유들은 늘어나고 있고,
스스로 사회경제적으로 불필요한 여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잉여인간 ㅎㅎ)이 늘어나는 현상은 그
사회에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현재 복지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바익은 정규직을 갖지 못한 자들은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불운에 책임질 필요가 았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우리 가운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시만 사회의 정치적 안정 또한 더욱 큰 위험에 노출되게
될 것이다.
*새로운 도덕적 이야기를 찾아서
★사람들이 정치와 정치가들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공공 정책의 의사결정에는 본질적으로 윤리적 성격이 내포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 정치적 논쟁은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한발찍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인간은 원래 본능적으로 도덕적 존재이며, 따라서 자신의 도덕적 본능을 표현할 만한 언어를
필요로 하는 존재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우리는 수단의 언어가 아니라 목적의 언어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우리 목표의 성공 가능성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목표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또 한나의 원천은 법과 정의의 구분이 흐릿해지고 있다는사실이다.
...골드만 삭스...'무분병하다는 것'은 금융 사기 못지 않게 비난을 살만한 일이다.(←무분별이 아니라 양심을 저버린!)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도덕적 담론이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기 추구하는 목표들...중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추구해야 할 목표가 바로 불평등을 완화하는 일이다.
무언가 '쓸모 있는' 혹은 '좋은'일을 하고 싶다는 젊은이들의 사그라지지 않는 욕망은 결코 억누를 수 없는
본능이 우리에게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 흐름을 바꿔야 할 시간이 왔다.
6.도래할 미래의 양상
*세계화
실수는 단 한번이면 족하다. 과거에도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범한 적이 있다. 경제는 국제화되고 있더라도
정치란 여전히 국가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 때도 되었다.
*공포이 정치학
친숙함은 불안을 즐여준다.... 극적인 기후 변화와 그에 따른 사회적.환경적 결과, 제국의 쇠퇴와 그에 수반되는 '국지적인 전쟁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발생하는 소요 사태들이 가져올 파괴적인 영향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집단적인 정치적 무기력 등은 쇼비즈니스트저긴 정치인들이 이용해 먹기에 가장 좋은 상황을 마련한다.
부패한 사회주의 체제기 '약탈 자본주의'로 전환되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분명히 관찰할 수 있다.
동유럽의 젊은니들은 경제적 자유와 개입주의적 국가는 서로 배타적이라는 가정을 충실히 받아들였다.
이는 미국의 공화당이 내세우는 도그마와 다르지 않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도그마는 공산주의자들이 사태를 보는 관점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 따라서 기층 민중들로부터 이러한 전통이 강력하게 지지받는 나라들은 독재의 유혹에 쉽게 빠질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체제의 정당성과 신뢰성을 자유주의적 실천이나 민주주의적인 형식이 아니라 질서
와 예측 가능성에서 찾았다. 대부분의 평범한 시민들은 실패한 민주주의 국가보다는 안정된 독재 체제를
선호한다.
<맺음말>
더 나은 삶을 찾아서
나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이의를 제기히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특히 그러한 젊은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자유로운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의 ㅅ;ㅣ만으로서, 우리는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의무가 있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그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다들 아시다시피, 철학자들은 이 세상을 오직 이리저리 해석하기만 바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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