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비전...!

삶을 일깨워 주는 오쇼의 글들......!

freestyle_자유인 2007. 11. 7. 14:49

<성숙과 노화>

성숙한 사람은 미래에 대해 미리 결정 내리지 않는다.

성숙한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이 내일을 결정한다.

성숙한 삶은 오늘을 산다. 나머지는 스스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

 

숙한 사람은 죽음 조차도 삶의 일부일 뿐이다.

죽음은 그가 산 삶의 결정이다.

그는 죽음을 통해서 가장 큰 배움을 얻게 된다.

그는 두 팔을 벌려 마치 가장 친한 친구를 맞이하듯 죽음을 끌어안는다.

 

깨달음을 얻은 이후 나는 무한한 지복감 속에서 살고 있다.

 

 

<성숙한 영혼>

면으로 들어갈 수록 더욱더 성숙해 지는 사람.

.....자아가 사라지고 오직 존재만이 남아 있는 사람.

오직 침묵만이 남아 있는 사람.

지식이 사라지고 오직 순수만이 남아 있는 사람.

 

성숙은 꽃향기를 가지고 있다. 성숙은 그것을 얻은 사람 누구에게나 놀라운 아름다움을 전해 준다.

지성, 날카로운 지성을 전해준다.

 

성숙한 사람은......전적인 자유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인생의 7주년 주기>

인생에는 7주년 주기가 있다.

생물학자들은 7년 주기로 우리들의 몸과 마음이 변화 한다고 말한다.

 

마흔두 살에서 마흔아홉 살,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탐구가 구체화된다.

새로운 결의감이 생기고, 외부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없다.

....마흔 아홉살, 이제 숲을 바라보아야 한다.

내면으로 옮겨가야  한다. 점점 더 명상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가슴이 기도로 채워져야만 한다.

 

쉰여섯살, 사회적으로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비로소 성숙해져야 한다. 할 시기이다.

삶에는 입구와 출구가 있다. 그 출구가 바로 구도의 길이다.

 

죽음을 맞이할 준비란 무엇인가? 행복하고 기쁘고 자발적으로 두 팔을 벌린채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음이라는 축제를 벌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는 삶에서 만난 모든 것에서 배움을 얻었다. 옳은 것뿐만 아니라 그른 것을 통해서도 커다란 가르침을 얻었다.

죽음은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된다. 삶의 절정이 된다.

삶에서 도달 할 수 있는 최고의 봉우리가 바로 죽음이다.

 

 

<성숙한 관계-필요와 주기, 사랑과 소유>

사랑은 필요의 충족이 아니라 가슴에서 사랑이 차고 넘쳐 흐를 때 가능하다.

아무런 조건 없이 줄 수 있을때 가능하다.

 

사랑은 존재의 산물이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 때 사랑의 오라가 주변에 가득해진다.

 

 

<성숙한 관계-사랑과 결혼>

사랑은 영원하다. 내면이 성장한 사람의 사랑은 영원하다.

내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상대방의 현존만으로도 행복이 솟아난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환희에 젖는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행복한데 더 무엇을 요구 할 수 있겠는가!

상대방의 존재만으로도 가슴 깊은 곳이 가득 채워진다. 가슴속에서 새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내면에서 조화의 교향곡이 흘러 나온다.

함께 있으면서도 개체성이 더욱 두드러지고 중심이 잡힌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성숙한 관계-부모와 자녀>

아이는 남녀가 벌이는 생물학적 성교를 통해서만 태어나는게 아니다.

깊고 명상적인 사랑을 통해서 태어나기도 한다.

 

명상적인 사랑이란 단지 육체적인 결합뿐만 아니라 서로의 존재 속으로 융해됨을 일컫는다.

 

 

<성숙한 관계- 사랑+ 각성+존재>

자유가 사랑보다 훨씬 더 귀하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자유가 우리를 본래 자아에게로 이끌어 준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자유가 곧 명상이 된다.

자유가 곧 깨어 있는 의식이다.

자유와 명상은 동전의 양면이다.

 

*사랑은 우리를 진짜로 만든다.

진짜가 아닌 사람은 속이 비어 잇는 망상이나 꿈과 같다,

사라은 속을 꽉 채워 준다, 사랑은 일체감을 준다. 사라은 우리 안에서 중심을 잡아준다.

 

하지만 여기서 여행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나머지 절반의 여정은 명상안에서 끝을 맺는다.

사랑이 처음의 절반이라면 각성은 끝의 반절이다. 이 둘 사이에서 우리는 신에게 도달 할 수 있다.

 

사라과 각성이라는 두 개의 강둑 사이에서 강물이 흘러간다.

사랑을 회피하려 들지 마라. 사라이 주는 모든 고통을 떠안은 채, 그 속으로 뛰어 들어야 한다.

물론 가슴이 아프다. 대로 아주 심하게, 끔찍하게 아프기도 하지만 상처로 인해 우리는 매순간 더욱 강해진다.

 

사랑을 하는 동안 상처나 고통은 전혀 문제기 되지 않는다. 모든 상처는 우리를 잠에서 깨워 주고 도전을 위한 힘을 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사랑이 땅을 골라 주는 명상이라면 씨앗이라는 사랑이라는 토양 속에서 자라기 시작한다.

명상이라는 씨앗은 오직 사랑이라는 토양 속에서만 성장 할 수 있다.

 

<사거리에 서서>

연꽃을 자세히 보면 물 속에 있으나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그대로 떠 있다.

우리도 연꽃과 마찬가지로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가슴이 열린 사람은  그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내면이 텅 빈 사람만이 순수하다.

텅 비어 있음으로 내면이 꽉 찬 사람만이 우주와 조화를 맞출 수 있다.

우주와의 화음이 맞춰지면 '나'가 사라져 버린다. 우주와 하나가 된다. 내가 곧 우주가 된다.

내가 우주가 되면  저 멀리 덜어진 별 조차 내 안에서 빛난다.

내면이 텅 비었으므로 무엇이나 그 안에 담을 수 있다.

꽃과 태양, 달도 담을 수 있다. 존재게의 모든 소리까지 담을 수 있다.

 

우리가 수직적인 삶을 살게 되면 삶 전체가 빛을 발하게 된다.

삶 전체가 펄떡거리는 심장처럼살아서 고동치게 된다.

삶 전체가 온 세상이라도 덮을 만큼 에너지 장을 창조해낸다.

 

<변화의 시기-NO 에서 YES로>

깨어 있는 의식은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

 

자유란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YES와  NO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긍정할 수 있는 자유와 부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변화의 시기-일치감과 자기중심>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단지 해만을 바라볼 때가 되었다.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꽃을 바라볼 때 특별히 해야 할 일리 무엇인가?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오직 아름다움만 남아 있을 뿐이다. 오직 기쁨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정원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리고 점차로 그대가 사라지고 있다고 상상한다.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지켜보면 도니다.

 

표류하는 나무가 되어라. 물줄기를 따라 흘러 가기만 하라.

물줄기가 그대를 이끌도록 내버려 두면 된다. 굳이 아무런 노력도 할 필요가 없다.

 

붓다가 21세기에 나타난 다고 하면 그는 예전처럼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 있을게 뻔하다.

그저 조용히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분이다.

그렇다고 가기 아무것도 하지 안은 것은 아니다.

 

그의 존재로 인해 엄청난 진동이 창조된다.

보리수 아래 앉아서 그는 온 세상을 변형 시킨다. 그러한 진동을 느끼기 위해서는 먼저 붓다와 화음을 이루어야 한다.

 

그대가 즐길 수 있는 것만을 한다!

즐길 수 없다면 그만둔다! 직접 시도해 보라.

즐거움은 우리의 중심에서 비롯된다.

어떤 일을 하되 즐길 수 있다면 우리는 즉시 중심과 다시 교류할 수 있게 된다.

 

삶은 넓고 광활하다. 게속해서 흘러가도록 하라.

에너지의 물줄기가 더 강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우리는 때로 남자 혹은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갑자기 그와 하나가 된 것같은 일치감을 느끼게 된다.

생전 처음으로 하나가 된 느낌을 갖게 된다. 눈이 반짝 거리고 얼굴에서 빛이 난다.

 

<변화의 시기-탄생과 죽음이 하나가 될 때>

내가 머물고 있는 집 바로 옆에 아주 오래된 나무가 빗속에서 춤을 추고 있다.

오래된 잎사귀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너무나 우아하게 떨어지고 있다.

빗속에서 춤을 추는 것은 나무 뿐이 아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잎사귀들도 함께 어울려 춤을 추고 있다.

빗속에서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종교적인 사람이란 매 순간 삶과 죽음을 함께 즐기는 사람이다. 삶과 죽음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삶이든 죽음이든 그 노래가 계속 울려 퍼지는 사람, 그 춤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사람이 바로

종교적인 사람이다.

그런 모험에 찬 영혼만이 종교적이다.

존재의 순레를 떠날 수 있는 사람만이 종교적이다.

 

<퍼즐-정단방위>

성숙한 사람은체면이나 위신을 동경하지도 않는다. 존경 받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오직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자신의 삶을 내놓고 타협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결코 자신의 자유를 희생할 생각은 없다.

 

<퍼즐-어떤 태도도 취하지 않는 인생>

우리 안에서 신을 볼 수 없다면 예수에게서도 신을 볼 수 없다.

스련이 된 사람은 경험을 통해 삶을 배워간다.

두려움 없이, 위험을 무룹쓰고 탐구와 모험을 계속해 나간다.

 

<계속되는 여행>

우리의 의식은 우주 전체보다 더 크다. 경계를 지을 수가 없다.

남들이 바보라고 부르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을 만큼 요기 있는 사람만이 살며 사랑 할 수 있다.

 

<계속되는 여행-성숙은 계속 된다>

성숙으로 가는 길에 마침표란 없다. 심지어 쉼표조차 찾아 볼 수 없다.

우주가 무한한 것처럼 성숙의 가능성도 무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