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스럽지만 부족하지 않게, 남부럽지 않게 자랐어요. 포이동이라는 곳, 외면하고 싶었죠. 그런데 막상 와보니 외면할 게 아니더라고요."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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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이동 공부방 입구 ⓒ 사람연대 대학생모임 |
포이동 인;연맺기학교에서는 저녁식사 전후로 수업이 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마을회관에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 식구가 많기도 많아서이지만 먹는 내내 인사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포이동 판자촌에 가면 항상 바쁘게 인사를 하게 된다. 골목골목 포이동 주민들과 수시로 인사하고, 저 멀리서 달려오는 아이들과 인사하고, 옆에 있는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과 자연스레 인사하게 된다. 이곳에서의 인사는 나 혼자 외침으로 끝나는 법이 없다. 인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항상 인사의 답이 돌아온다.
인사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무수하게도 이루어지는 그 곳, 그 만남이 살아갈 희망이 되는 곳, 바로 ‘포이동 인;연맺기학교’다.
“봉사를 위해 이곳에 온다는 생각은 없어요.”
혹여나 수업에 방해될까 조심조심 마을회관 3층을 들어서는데 들리는 소리가 꽤나 시끌시끌하다. 수학문제 하나를 가지고 교사과 아이가 ‘틀렸네, 맞았네.’하며 옥신각신하고 있다. 수학문제는 분명이 답이 정해져 있을 진데, 서로 답이 다른지 열심히 서로를 설득한다. 선생님도 “이것이 맞다”며 열심히 설득하고, 아이도 “나는 이런데요?”라며 선생님 못지않게 설득한다.
누가 답이었을지는 상상에 맞기면서, 다른 팀을 보니 선생님과 아이들이 바짝 붙어 서로를 향해 몸이 기울어있다. 누군가에게 몸을 기울이는 건 신뢰의 표시라는데 서로들 모두, 서로에게 기대어 있다. 선생님들의 눈빛에서 불꽃이 튄다. 아이들의 연필 잡은 손은 꽤나 바지런하다.
포이동 인;연맺기학교에서 교사 활동을 시작한지 반년이 다 되어가는 혜진 선생님. 수업분위기가 상상하던 것보다 좋다는 말과 함께 비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미소를 지으면서 ‘그래 보이냐’며 한없이 쑥스러워 한다. 그런데 이 사람, 참 신기하다. 맘껏 쑥스러워하다가도 눈에서 광선을 내뿜으며 질문에 답을 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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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이동 인연맺기학교 혜진 선생님은 단맛보다 쓴맛을 좋아하고 싶은 20살이다. ⓒ 사람연대 대학생모임 |
“아이들과 맞추어 나가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그게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길이었어요. 내가 즐겁지 않은데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이곳에서 주민들, 아이들, 부모님들, 선생님들과의 관계맺음은 제 자신의 변화를 느끼게 해줬어요. 단순히 여자선생님이 아니라 혜진 선생님으로 불렸을 때 가슴 찡하던 그 순간이 안 잊혀요. 제가 너무 많은 걸 배워요.”
혜진 선생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자신이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고 했다. 혜진 선생님은 줄곧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포이동 사람들과의 관계맺음 속에서 자신의 변화부터 그저 막연히 시작했던 활동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까지의 변화까지.
“내가 착하기 때문에 포이동에 오는 건 아니거든요. 내가 포이동에 오는 것이 봉사를 위해 온다는 생각은 없어요.”
“음지의 문제들을 외면하는 것, 씁쓸했어요.”
얼마 전 포이동 주민 분들과 사람연대 대학생모임에서 9월 7일 열었던 ‘2030 복지한국? 포이동266번지는 절규한다! 제 7회 사회복지의 날, 서울 저소득지역 공부방 교사 기자회견’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말에 혜진 선생님 눈빛의 불꽃이 한 번 더 튄다. 파팟!
“의식주는 기본이잖아요. 먹고 잘 수 있는 공간은 기본적인 권리이잖아요. 충족되지 않는 환경에 사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사회복지정책, 국가가 음지의 문제들을 외면하는 게 씁쓸했어요.”
원래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냐는 질문에 또다시, 매력적인 쑥스러움을 발휘하며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쑥스럽지만 저, 부족할 것 없이, 남부럽지 않게 자랐어요. 처음엔 포이동이란 곳, 외면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 외면할 것이 아니었어요. 이건 아니다 싶었죠. 성람재단 장애인시설 비리문제도 마찬가지였어요.”
혜진 선생님은 일부 전교조 선생님들이 시위 때문에 아이들 수업을 빠지는 것이 옳지 않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주변부터 시작하는 것 아니겠냐며 힘주어 말한다. 내 아이들을 보고, 그리고 포이동 공부방을 보고 그리고 그 다음을 보고, 차근차근 눈을 넓혀가겠단다. 그래서일까. 혜진 선생님은 “눈도 커지고 귀도 깊어지고, 공부도 하고, 주변부터 들여다보면서 넓은 시야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다.
사람연대 대학생모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혜진 선생님은 말에 바로 내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면서 앞으로도 내가 보지 못하는 것, 내 발밑에 있는 것들을 부탁한다는 말을 한다. 가장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그 길에는 혜진 선생님이 굳건히 있을 거라는 믿음이 나를 웃게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그 삶이 변한다
어느새 밤기운이 들 무렵 삼삼오오 모여 공부방으로 쓸 공간을 보러갔다. 지금의 마을회관으로는 공간이 좀 부족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좋다’, ‘여기서 하자’, ‘언제 방을 치우자’는 말을 하더니 어느새 공부방 공간을 보수할 날짜까지 잡는다. 순식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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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이동 인;연맺기학교 교사들이 수업이 끝나고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람연대 대학생모임 |
그런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에 대한, 수업에 대한, 포이동에 대한 선생님들의 열의가 포이동 인;연맺기학교의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그 삶이 변한다. 선생님들은 포이동 아이들을 만나 소외된 이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눌 수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포이동 사람들과 선생님들이 만나 포이동의 아프고 절절한 현실을 바꿀 수 있도록, 아이들이 더 이상 눈물 훔치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있도록 발걸음을 움직이고 있다.
* 포이동 인;연맺기학교는?
강남 타워팰리스 앞 판자촌에 사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사람연대 저소득층 공부방으로 미취학 아동반, 초등학교 저학년반, 고학년 반, 중고등반이 운영되고 있다.
홍정애 2005년 하반기 중앙대학교에서 최초의 인;연맺기학교를 준비하고, 교장직을 맡았다. 올해에는 2기 중앙대 인;연맺기학교 교사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사람연대 대학생회원으로 자원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