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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고 낯선 감각" 김재형 개인展/갤러리 이즈/2013.1.16~22

freestyle_자유인 2013. 1. 18. 23:00

괜찮은 작품을 만났다.

 

깊이 사유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작품을 토해내는 작가란 생각이다.

 

직접 작품마다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친절히 설명하는 작가!

 

자신의 주변에 혹은 자신이 쓰는 물건들에서 사물과 자신 사이의 관계 벽 그것이 귀 섞이는 듯한 느낌과 생각들을 작품으로 풀어낸 작품들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헬멧을 벗는 순간, 자신의 몸과 헬멧 하나로 뒤엉키는 듯한 느낌을 표현 했다는 작가의

  설명이 있었다.

 

*작가의 작업실 한쪽 문과 벽을 캐스팅!

*invisible works- 이불 tv _이불 합성수지, 가변설치_2011

 

 

 *작품명:작업대 / 의자쇼파

*fleshless skin- 공기총

콘크리트가 휘저어질 때 표면과 이미 굳어가는 것과의 그 미묘한 가시적인 혼동...을 작품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본래 전동 장치를 해서 콘크리트를 지속적으로 저으려 했는데...그 장치를 하지 못해 많이 아쉬워 하던 작가)

계단을 따라 흐른 물이 얼었던 모습을 보고 그 흔적을 캐스팅 하듯 떠서 작업을 했다는 작가의 설명.

 

*작품명: 펑키를 위한 비석

< 기르던 강아지 펑키가 죽었을때- 그때 만져지던 촉감은 평상시에 만져지던 부드러운 느낌이 아닌 딱딱한

  느낌이였다고! 그래서 역으로 실제로 만지면쿠션이 있는 벽돌 모양의 오브제를 이용 닥딱했던 펑키의

  몸을 떠올리며 비석을 만들었다고 한다.>

 

대상과 심상(心像)

 

 

 

 

김재형은 망치, 가위, 전동공구, 이불, TV 등과 같이 자신의 눈과 손에 닿는 일상용품을 마치 피와 살을 가진 육체처럼 나타낸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사물 속에 몸이 스며들어간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다음과 같은 의문이 떠오른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사물은 내 몸 바깥에 놓여 있는 대상인 것일까, 아니면 내 몸 안에 스며든 심상(心像)인 것일까? 지금 내 시선과 의식 속에 생생하게 자리 잡고 있는 사물들은 제 고유의 물성으로 제 나름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이들은 내 몸의 존재 여부에 상관없이 이미 공간 속에 존재하고 있다. 이들이 내 몸 바깥에 독립해 있는 대상이라는 것은 구태여 따져볼 필요도 없는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금세 이에 대한 반론이 재기된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사물의 모습은 내 눈과 몸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들은 오직 눈과 몸에 투영된 상(像)으로서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는 내 몸에서 독립된 대상처럼 인식되지만 사실은 내 육체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심상으로서 받아들여진 것이다. 특히 이들 가운데 오랫동안 접촉해서 눈과 손에 익은 사물들은 거의 ‘내 몸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사물은 몸 밖의 대상으로 설정될 때 보다는 오히려 몸 안에 스며든 심상으로 이해될 때 보다 생생한 현실감을 갖게 된다.

이처럼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을 가져다 준 김재형의 작품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는 것일까? 이미 언급하였듯이 그의 작품은 작가의 몸속에 스며들어 있는 사물의 심상을 몸 밖의 대상으로 나타낸 것이다. 김재형은 사물이 자신의 몸속에서 심상으로 맺힐 때 겪게 되는 육체적인 합일의 경험을 작품에 충실하게 옮기려 한다. 예컨대 김재형이 작업실에서 자주 사용하는 망치는 원래 그의 몸 밖에 놓여 있는 대상이다. 나무 자루와 쇠뭉치로 이루어진 그것은 단단하고 무겁다. 하지만 그것은 망치로서 계속 사용되는 가운데 김재형의 몸속에 하나의 심상으로 자리 잡는다. 심상으로 전환된 망치는 단단하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다. 그것은 살덩이처럼 부드러우며 자유롭게 휘어진다. 그리고 때로는 망치질 하는 방향에 따라 여러 개로 증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망치의 심상은 김재형의 몸속에 폐쇄되어 있어서 본인이 아닌 이상 그것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그것을 다른 이와 공유하기 위해 김재형은 몸속에 형성되어 있던 망치의 심상을 몸 바깥에 있는 대상의 형식으로 다시 전환시킨다. 이 때 다시 몸 밖의 대상으로 되돌아온 망치는 심상이 되기 이전의 망치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게 된다. 김재형은 망치가 몸속 심상으로 있을 때 머금었던 육체의 자취를 망치에 적극적으로 반영시키고자 한다. 그리하여 망치는 대상으로 있을 때의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서, 길이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고, 부피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김재형은 망치뿐만 아니라 가위, 전동 공구, 이불, TV 등과 같이 친숙한 심상으로 자기 내면에 투영되어 있는 사물을 작품으로 제작한다.

그러한 결과로서 나타나는 김재형의 작품은 대부분 사물과 육체가 뒤섞여 있는 기묘한 형상이 된다. 그의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① 대상 (몸 바깥) → ② 심상 (몸 안) → ③ 대상 + 심상 (몸 바깥) 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때 작품으로서 드러나는 것은 ③에 해당하는 과정이겠지만, 사실 가장 섬세하게 조율되어야 할 부분은 작품으로 나타난 ③ 과 실재 대상 ① 사이의 대비이다. 그러한 대비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을 때, 비로소 눈에 드러나지 않는 ② 의 과정이 전달될 수 있다. 다시 망치의 예를 들어 설명해 보면, 관객은 ③에 나타난 망치의 형상과 ①의 과정에 놓여 있는 망치를 대비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일상에서 망치의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결핍과 문제의식을 유추하게 된다. 그것이 가능해야만 ②의 과정 속에 은폐되어 있는 망치의 심상을 ③의 과정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작가가 기울인 노력이 설득력 있게 전달될 수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사물과 육체가 뒤섞여 있는 ③의 형상이 너무 부각되어, 관객에게 ① ②의 과정을 음미 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작가가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 미술의 중요한 미덕 가운데 하나는 그저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게 되는 일상의 감각활동에 대해서도 의미심장한 성찰의 지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김재형의 작품은 우리가 사물을 감각할 때 이루어지는 대상의 인식, 심상의 발생, 그리고 대상과 심상 사이의 대립과 혼합을 자신의 작품 속에 집약시켜 드러내고 있다. 그의 작품은 한 개인의 특이한 감각 활동을 표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일상의 사물과 맺고 있는 관계의 보편적인 지점에 닿고 있다. 그의 작품이 환기 하는 것은 지금 내 감각에 닿고 있는 키보드, 커피잔, 모니터, 필기구와 같은 사물들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사려 깊게 반응하는 관객은 일상의 감각활동 전체를 갱신할 수 있는 일종의 방법론을 그의 작품 속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 강정호(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박사과정)

 

 

 <변회된 사물들>

생명을 담고 있었으나 그것이 떠나간 몸은 생명체도 일반적인 사물도 아닌 제3의 물질이다. 그것은 활동하던 시기의 흔적만을 고스란히 남긴 채 스러진 그 자리에 정지되어 있다. 고요하고 아련한 느낌으로..

 

사용감이 있는 오래도니 물건들을 보며 새 것일 때와는 사뭇 다르게 변화되어 있다고 느낄 때가 있었고,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는지 궁금하였다. 사람들이 물건을 곁에 두고 자주 사용하면서 그들의 개성, 습관에 따라 동화되어 독자적인 사물로 변화하는 듯 보였다. 그것은 마치 아련하게 생명이 떠나간 시체를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사용감이 있는 물건, 사람이 살던 흔적이 진하게 묻어있는 빈 집은 마치, 고요하고 특별하게 바라보길 바라는 듯한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본 작품에서 선택한 사물들은 주로 본인과 오랜 시간 접촉하여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해온 것들이다. 그것들을 사용하며 느기게 되는 감정과 촉감을 기억하며, 그 경험을 사물에 투영시켜 변조하였다. 어떤것들은 사용할 때의 움직임과 촉감을 간직하여 마치 신체의 일부분 같았던 기억을 떠올리고, 어떤것들은 사물의 실체가 사라져 겉표면만 유지한채 허물처럼 한자리에 머물러 있도록 하였다.

 

                                                                                                                 -작가노트-